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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음식/경상

남해안 구석구석 어록따라 가는 이순신장군 이야기

by Mr-후 2017.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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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부산부터 서쪽 전남 신안까지 우리나라 남해안 구석구석마다 이순신장군의 자취가 없는 곳이 없다. 

'필사즉생' 이라는 명언을 남긴 명량대첩의 무대 전남 진도 앞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라는 시를 읊었던 경남 통영의 한산도,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마지막까지 장군의 면모를 보여준 노량대첩이 벌어진 경남 남해 관음포 앞바다. 장군 이순신뿐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곳들. 



신안 장산도 

명량해전 뒤 장산도에 있던 이순신에게 아들의 죽음이 전해졌다. "간이 녹는 듯한 슬픔에 목놓아 울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잘못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아들 무덤에도 못 가보고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진도 명량해협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살고 살고자 한 자 죽을 것이다".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일본군을 물리친 전설적인 전투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이 부하들에게 이른말이다. 비록 전력에는 큰 차이가 나지만 죽기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장수의 결기가 보인다. 


보성 열선루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이순신은 전세를 파악하기 위한 연안답사 중 보성에 도착해 열선루에 머무르고 있었다. 선조가 '수군을 폐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이순신은 살아 있는 한 싸우겠다는 답을 보낸다. 이후 12척의 배로 출전해 승리한 전투가 명량대첩이다. 


고성 발포만호성 

"하찮은 오동나무 한그루라도 사사로이 베어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거문고를 만들겠다며 발포만호성 객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 보내라는 전라좌수사의 명령에 이순신이 이렇게 답했다. 이순신은 직속상관의 명령도 원칙에 맞지 않으면 거부할 만큼 강직했다. 


통영 한산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1592년 한산도대첩 승리 이후 한산도에 제승당을 짓고 삼도수군 통제영으로 삼은 이순신이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수루에 올랐다가 지은 시다. 


일성호가는 한 곡조의 피리소리.

제승당은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두억리한산도에 있는 사당으로 이순신의 사령부가 있던 곳. 

통제영은 조선시대 통제사가 있던 영문. 경상도 고성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통영


남해 관음포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은 말라." 1958년 11월 관음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의 총을 맞은 이순신이 남긴 유언이다. 군사들이 동요해 전투를 그르칠까 염려한 것이다. 조선은 승리했고, 이 전투를 끝으로 10여년에 걸친 임진왜란도 끝났다. 



충무공 동상 이야기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벚꽃축제인 창원의 진해군항제. 연간 200만명 이상의 인파가 찾는 이 축제가 우리나 최초의 충무공 동상 건립을 계기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952년 4월13일 진해구 도천동 복원 로터리에서 국내 최초의 충무공 동상이 제막되면서 추모제가 열렸다. 이후 추모제를 주관한 해군 진해 기지사령부에서 개최 시기를 고민하다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 거행 했고, 1963년부터 문화예술행사가 결합된 봄축제로 발전했다. 높이 4m 82cm에 다라는 이 동상은 제작 당시 대형 동상을 주조할 만한 시설이 없어 함선을 제작하던 해군 공창에서 만들어졌다.  


서울 광화면 사거리에 세워진 충무공 동상은 고증문제로 논란이 됐다. 1968년 4월 27일 정부 산하단체와 한 신문사가 공동으로 건립한 이 동상은 인물을 선정할 때 남쪽에 있는 일본의 기운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한 일부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일본이 가장 두려워할 인물인 이순신으로 결정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칼을 오른손에 잡고 있어 항복한 장수로 오해받을 수 있다' '쥐고 있는 칼이 일본도다' 와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이후 문제가 없다는 고증위원들의 판단이 나오면서 논란을 일단락 됐다. 


명량대첩의 무대인 울돌목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최초로 상표등록을 한 동상이 있다. 전남 해남군이 2015년 상표등록을 마친 '명량의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은 큰 칼을 차고 호령하는 거대한 동상들과는 달리 2m의 작은 크기지만 평상복을 입고 고뇌하는 충무공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고자료 = 대한민국 구석구석/한국관광공사 > / 출처 : 농민신문 


이미 일년이 지났을 것 같은데 작년 신청한 농민신문 구독이 어제까지 배달이 되었다. 귀농귀촌을 생각하면서 구독을 했던 것인데 아직도 배달이 되는걸 보니 이상하다. 가끔 향수가 생각나기도 하고 지난번 남해 모임이 있어 내려갔을 때 너무 인상적이었던 터라 남해안 일대 이순신장군의 이야기가 개제 되어 옮겨 보았다. 


제주 이주 후 복귀한 뒤로 산보다 바다가 더 좋아졌다. 그리운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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